의학소설이라고 하면 흔히 의사가 주인공인 소설들이 떠오르잖아요. 의사가 주인공이 되어 사건을 파헤치거나 음모를 밝혀내는 그런 것이요. 하지만 저는 의학이란 결국 우리 몸에 대한, 우리 몸을 위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꼭 의사가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의학을 둘러싼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들을 위주로 골라 보았습니다.
『울지마, 인턴』
나카야마 유지로 지음|오승민 옮김|미래지향|2020년|256쪽
현직 의사가 직접 쓴 인턴의 이야기. 어린 시절 눈 앞에서 같이 놀던 형이 심한 알레르기로 인한 쇼크로 죽어가는 것을 본 류지는 사람을 구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고 노력해서 의사가 됩니다. 하지만 의대를 6년이나 다니고 의사국가고시까지 통과했지만, 아직 인턴인 그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류지는 매일 같이 웁니다. 환자에게 미안해서, 자신이 아직 할 수 있는게 없어서, 때로는 의학적 처치를 해도 죽어갈 수 밖에 없는 환자가 안타까워서, 몰래 몰래 웁니다. 하지만 매일 당직실에서 밤을 새며 쓰러질 때까지 환자에게 달라 붙어서 환자들을 살피는 류지의 등 뒤로 환자들은 고비를 넘기고 회복하여 건강하게 돌아갑니다. 류지는 오늘도 울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덜 웁니다. 환자들 덕에 말이죠.
『피프티 피플』
정세랑 지음|창비|2016년|396쪽
50명의 사람들. 제목 그대로 병원을 둘러싼 50명의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워낙 등장인물이 많다보니, 한 사람마다 할애되는 페이지도 얼마 되지 않아 그냥 슥슥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병렬식 구성을 통해 처음에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점차 진행되어 갈수록, 그들은 서로에게 가족으로 동료로 원인제공자로 구조자로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져 결국에는 50명의 사람들이 모두 하나의 커다란 인연임이 드러납니다. 이 소설의 매력은 흔히 병원이라는 공간에 가장 어울릴 것 같은 의사와 간호사, 환자 뿐만 아니라, 환자의 가족과 방사선실과 검사실의 직원들, 행정업무를 보는 사람들과 보안요원들에 기타 소소한 잡무를 수행하는 사람들까지 병원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모두 다루었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50명의 사람들 중 누구에게 가장 마음이 쓰이고 눈길이 가던가요? 그게 바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인물은 아닐까요?
『난 모기에 물리지 않아』
펜드레드 노이스 지음|조윤진 옮김|뜨인돌|2019년|248쪽
14살 소녀 날라는 지극히 평범한 소녀입니다. 딱 하나,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모기에 절대로 물리지 않는다는 것 뿐.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운이 좋을 뿐일 것이라 생각했던 특이한 체질은 클래스메이트인 얼리샤의 귀에 들어가면서 일이 커지기 시작한다. 다국적 제약회사의 대표인 얼리샤의 아빠는 날라의 특이한 체질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 보통 모기는 사람을 체취로 찾아낸다. 그래서 날라의 몸에서 발산하는 체취물질 중에 모기가 싫어하는 냄새 성분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연구를 위해 모기에 의한 질병이 만연한 케냐에 날라를 데려갑니다. 하지만, 케냐에서 날라는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를 박멸하기 위해서는 효과 좋은 치료약에 더해, 사회적 제도와 기업의 이윤과 정치적 함의가 모두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예방의학의 중요성과 약이 개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받지 못하는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소설.
#예방의학 #미국소설 #청소년소설 #모기 #말라리아 #치료약이있어도치료받지못하는사람들 #모기에물리지않으면얼마나좋을까
『마이 시스터즈 키퍼』
조디 피코 지음|이지민 옮김|시소|2017년|556쪽
11살 소녀 안나는 어느 날, 변호사 사무실을 홀로 찾아와 대뜸 자신의 건강권을 위해 부모를 고소하겠다고 합니다. 기가 막힌 변호사. 하지만 안나의 말은 매우 충격적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안나의 언니 케이트가 두 살의 나이로 백혈병 판정을 받습니다. 유일한 치료법은 제대혈 이식 뿐이지만, 면역적합성이 맞는 사람을 찾을 수 없어서 부모는 죽어가는 딸을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구릅니다. 이 때 의사가 넌지시 방법을 제시합니다. 케이트에게 제대혈 이식을 해줄 수 있는 맞춤아기를 만드는 방법을 말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바로 안나였죠. 안나가 태어나 케이트가 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문제는 해결되고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났으면 좋을 테지만, 케이트의 병은 다 나은 게 아니어서 몇 번이나 재발하였고, 그 때마다 안나는 언니에게 혈액과 골수와 줄기세포를 기증하면서 고통을 견뎌야 했지요. 결국 안나는 변호사를 찾습니다. 내 몸은 내 것이고,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나는 언니의 백업 카피로 존재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기나긴 법정 공방이 이어지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던 가족들 한 명 한 명의 눈물겨운 스토리가 이어집니다. 사실 안나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언니를 살리고 싶을만큼 언니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왜 이런 법정 공방을 이어가는 걸까요? 이에는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 1~5권』
한산이가 지음|몬스터|2020년|총 2,156쪽
가상의 대학병원 한국대학교 중증외상센터의 난폭한 천사, 백강혁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 의학 소설. 웹소설로 연재된 것이 책으로 묶여 나왔는데, 분량이 어마어마합니다. 하지만 웹소설답게 빠른 전개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불친절하지만 사람 살려내는 실력만큼은 최고’인 의사 백강혁의 독특한 캐릭터가 더해져 책장은 매우 쉽게 넘어갑니다. 웹소설이지만, 흉내만 낸 의학 소설이 아닙니다. 이 소설의 작가는 현직 의사이자 의학 유투버로, 의료 현장에서 직접 겪은 경험과 지식으로 무장하여 의학적 오류가 거의 없는데다가, 덤으로 병원을 둘러싼 다양한 뒷이야기들과 우리나라의 보건 의료 체계에 대한 날선 비판까지 고루 버무려낸 솜씨가 뛰어납니다(도대체 이 분은 못 하는 게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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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
과학책을 읽고 쓰고 알립니다. 해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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