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약 3천 여개의 언어 중에 사전을 갖고 있는 언어는 고작 20여 개에 불과하다. 2차 대전 후 대부분의 나라가 독립 후 제 나라말을 잃고 자신들을 침탈했던 나라의 언어를 쓰고 있지만 가장 혹독한 식민지 치하에서도 우리 선조들은 우리 말과 글을 지키고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는 걸 또 다른 독립운동이라고 여겼다. 사전 편찬은 세상의 모든 지식을 모으는 일이고 그 겨레의 문화와 얼을 기록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말 사전과 관련된 다섯 권의 책을 읽으며 우리 말과 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면 어떨까?
『나라말이 사라진 날』
정재환 지음|생각정원|2020년|272쪽
지금은 너무나 당연히 쓰고 있는 우리말글을 온전히 지켜낸 데는 조선어학회의 힘겨운 투쟁이 있었다. 인기 개그맨이었으나 지금은 한글지킴이로 더 유명한 저자는 ‘언어와 겨레의 운명은 하나’라는 생각으로 우리 말과 글을 말살하려는 일본의 탄압과 압력에 맞서 조선어 연구와 우리말 사전을 펴내려 애썼던 조선어학회의 말모이 투쟁사를 꼼꼼히 되짚어준다.
사전의 중요성을 깨닫고 말모이 편찬을 주도했던 주시경 선생, 사전편찬위원회를 만들고 사전 편찬의 기초가 될 표준어 사정, 맞춤법 통일안, 외래어 표기법의 기준을 마련한 조선어학회의 활동, 조선어학회 사건의 전말과 창고에 버려진 말모이 원고를 찾아 30여 년 만에 우리말 큰사전을 완성하기까지 사전 편찬의 역사를 담고 있다. 말과 글을 지켜낸다는 것과 사전 편찬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말을 캐는 시간』
윤혜숙 지음|서해문집|2021년|220쪽
순사부장의 아들이자 불량학생 규태와 모종의 거래로 문예부에 들어간 모범생 민위는 백석 시를 좋아한다는 노리코에게서 조선에는 왜 사전이 없냐는 물음에 충격을 받는다. 교지 복간을 준비하는 동안 소년 주필로 인정받은 고향 선배 영철과 조선어학회 회원들을 만나면서 사전 편찬 일을 알게 된다. 방학을 맞아 춘천에 내려간 민위와 규태는 노리코와 덕이 아재의 도움으로 한글 자모표를 만들고 사투리 조사를 위해 한글 강습회를 연다. 이를 수상히 여기던 일본 경찰의 추적은 조선어학회로까지 이어지는데….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어를 쓰는 게 당연했던 일제 강점기의 고보 학생들이 사전 편찬에 필요한 사투리 조사 활동을 펼치며 몰수 위기에 처한 사전 원고를 지켜낸다.
『급식체 사전』
광양백운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 지음|학교도서관저널|2018년|276쪽
급식체는 급식을 먹는 세대, 즉 십대가 쓰는 언어다. 십대들은 대화는 물론 SNS, 인터넷방송, 게임 등에서 습관적으로 급식체를 쓴다.
고등학교 사서 선생님인 저자는 1학년 학생들과 진행했던 ‘급식체 사전 만들기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자주 쓰는 급식체를 조사하고 급식체를 쓰는 이유와 장점 등 10대들의 말 문화를 정리했다. 감정을 표현하는 급식체, 초성 또는 첫음절만 따 말을 줄여 쓰는 급식체, 모양이 비슷한 다른 글자로 바꾸거나 뒤집어쓰는 유희적 급식체 등 각 단어의 뜻풀이는 물론 상황에 따른 사용례 등을 통해 십대들의 언어 생활을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다.
『말모이,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말모이 편찬위원회 지음|시공사|2021년|656쪽
어문학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이 십시일반해서 만든 우리말 사전이다. 90년 전 사전 편찬을 위해 조선어학회가 벌인 ‘말모이 대작전’에 당시 사람들이 참여했던 것처럼 사라져 가는 옛말과 입말, 지역어(사투리) 등을 국민의 손으로 모아보자는 생각이 첫 시작이었다. 이 기획에 국립국어원, 한글학회, 네이버, 한글과컴퓨터 등이 참여했고 2019년 10월부터 10개월 동안 약 10만여 건의 단어를 모았다. 그중 표준어대사전과 우리말샘에 소개되지 않은 말을 우선 선정, 새로 찾은 우리말 4,012개를 사전으로 펴냈다. 표제어마다 사용지역, 품사, 해당 표준어, 뜻풀이, 변이과정과 문화적 의미 등이 수록돼 있어 읽는 재미를 더했다.
『우리말 사용 설명서』
이미숙 글, 그림|이비락|2020년|292쪽
‘축제’는 ‘일본인들이 신령에게 지내는 제사’에서 온 말이고 ‘식상하다’는 ‘밥이 상하다’는 뜻을 가진 말인데 지금은 다른 상황에서 흔히 쓰는 말이 되었다. 30년 경력의 국어교사인 저자는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잘못 알고 헷갈려 쓰고 있는 136가지의 말을 가려내 예문과 함께 직접 그린 그림으로 쉽게 설명해준다. 자주 쓰지만 고쳐 써야 할 우리말, 제대로 알고 써야 할 한자말, 솎아내 써야 할 일본말 등 말의 어원을 밝힌 글과 그림은 딱딱한 국어 수업이 아니라 마치 유쾌한 수다를 떠는 것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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