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다움과 페미니즘의 공존 (독자맞춤)

* 남자다움과 페미니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퍼뜨리고 다녔다는 이유로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그저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사람을 죽여야 할 만큼 위험한 발언이라고 생각되었던 이유는 뭘까. 우리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더 깊이 성찰할만큼, 우리는 덜 어리석어지고 덜 충동적이 되며, 진심으로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법이다. 그러니 누군가는 싫어할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이 똑똑해지고 생각이 깊어질수록 그들을 마음대로 다루고 정치적으로 선동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법이니까. 갈등이 심하고, 증오와 미움이 넘쳐나는 분야일수록 한 번 더 반문해 보자. 나는 정말 내가, 혹은 그들이 어떤 존재이고 무엇을 원하기에 이토록 싸워대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그건 최근 들어 점점 더 깊은 골을 드러내고 있는 성별 차이에 대한 서로간의 갈등과 혐오 현상 역시도 마찬가지다.

책읽기 싫어하는 남학생들과 페미니즘 도서를 함께읽고 싶다는 사연을 보내주신 가랑비님의 요청 큐레이션입니다.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최승범 지음|생각의힘|2018년|200쪽


『맨박스』

토니 포터 지음|김영진 옮김|한빛비즈|2019년|232쪽

진정한 남자다움이란 뭘까. 이 책의 저자 토니 포터는 페미니즘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이다. 몸집이 크고 힘이 센 건장한 남성으로, 전통적인 사회 가치관 속에서 ‘남자답다’고 여겨질만한 조건을 모두 타고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남성들이 남자다워야 한다는 사회적 억압 속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남자다움의 틀인 맨 박스(man box) 안에 가두면서 살아가면서 행복하지 못한 수많은 남성들의 모습에서 의문을 가진다. 남성은 왜 슬플 때도 마음껏 울면 안 되고,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도움을 구하지 못해 인생을 망치며, 심지어는 남성 스스로도 다른 남성을 자신의 여자친구나 여동생을 해칠 수 있는 존재들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일까(여자친구가 예쁘지만 야한 옷을 입어 기분나쁘다면, 여동생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는 것에 신경이 쓰인다면). 결국 맨박스를 깨고 나오는 것은 남자에게도 ‘인간다울 권리’를 허용하는 것이며, 그 것이 바로 페미니즘이 아주 오랫동안 주장해왔던 ‘여성’이 아닌 ‘인간’으로 대우받을 것을 원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특히나, 대학 내 스쿨버스 논란 등 수많은 현실적 사건들을 통해 스스로 맨박스에 얼마나 갇혀 있었는지를 파악하게 해주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남자 #페미니즘 #맨박스 #남자다움 #남성성의신화깨기 #여성은지켜야할존재가아니고남성은지켜주는존재가아니다 #지켜주고지키지말고지켜야할필요가없는세상을만들자


『체체파리의 비법』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지음|이수현 옮김|아작|2016년|536쪽

때로는 너무 현실적인 논픽션보다는 지어낸 이야기가 더욱 울림이 클 수 있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는 여성 혐오가 너무 심각하게 발전한 집단 광기의 세계를 그린다. 그 세계의 남성들은 그들이 평화로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지금처럼 힘들게 된 모든 이유가 선악과를 권해서 그들을 타락시킨 여성의 탓이었다며, 다시금 신의 아들로 돌아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여성들을 모조리 죽여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 그렇게 모든 여성들을 죽여 신의 사명을 이루고 난 이들에게 주어진 건? 당연하게도 에덴 동산으로의 초대가 아니라 그저 모든 인류의 멸종일 뿐이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은 여성을 죽이고, 종국에는 스스로도 죽여버린 것일까. 결말에 숨은 반전을 보면 이해가 간다. 책은 두꺼운 편이지만, 여러 편의 단편을 모은 책이라 읽기에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그리고 애초에 이 소설이 작가 자체가 일종의 블랙 유머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라는 지극히 백인 남성스러운 이름은 앨리스 셀던이라는 여성의 필명이었다. 이유는? 뻔하다, 여성이 페미니즘 소설을 쓰면 ‘또 그저 그런 이야기 지어냈네’라는 평가를 들을 것을 고려해 자신의 성별을 숨긴 것이다. 남성의 이름으로 쓴 소설은 오로지 소설 그 자체만으로 평가 받을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고 한다.

#페미니즘 #SF #미국소설 #남장작가 #체체파리 #휴스턴 #여성혐오 #인간은무성생식을하지못한다서로죽이면모두죽는다


『테스토스테론 렉스』

코델리아 파인 지음|한지원 옮김|딜라일라북스|2018년|320쪽

엄마들이 사내아이를 키우면서 하는 말들이 있다. “남자애들은 거칠고 손이 많이 가.” 아빠들이 딸에게 하는 말이 있다. “아빠 빼고 다른 남자들은 다 늑대들이야”. 이 밖에도 남성들을 표현하는 몇 가지 통념들이 있다. 남자는 대개 바람둥이며, 경쟁을 추구하고, 지배적이고 폭력적인데, 심지어 이를 설명할 때 과학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남성성의 근원은 소위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 때문으로,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의 생식기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을 넘어, 발달 중인 아기의 뇌에 영향을 미쳐 소위 ‘남성다운 뇌’를 만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이런 고정관념에 대한 파격적인 일침을 가한다.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한가지 호르몬에 과다한 의미를 투여하여 모든 부조리한 현상을 “남자는 원래 그래”라는 한 마디 말로 퉁치려고 하는 것은 매우 게으른 생각이라고 말이다. 실제로 인지신경과학자이자 두 아들을 키우는 저자는, 학술적인 이론과 실제적인 경험을 통해 모든 사람들은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를 가진 것이 아니라, 이 둘이 서로 다른 비율로 혼합된 모자이크적인 인간 뇌를 가졌을 뿐이라고. 그러니 테스토스테론에 대한 신화는 이미 멸종한 공룡 렉스처럼 사라져야 할 운명이라고 말이다.

#페미니즘 #남자 #남자다움 #테스토스테론 #섹스와젠더의차이 #호르몬의노예를자처하지말라 #과학을신념의도구로이용하지말것


『남자다움이 만드는 이상한 거리감』

벨 훅스 지음|김고연주 해제|이순영 옮김|책담|2017년|320쪽

흔히 남자들이 페미니즘을 싫어하는 건 모든 남성을 압제자로, 모든 여성을 피해자로 단순히 이분법화시키는 시선들을 먼저 접했고, 언론에서 이런 극단적인 모습을 더 많이 노출시켰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싸잡아서 범죄자 취급을 받는데, 발끈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페미니즘 운동을 오랫동안 주도해 왔던 작가는 고민한다. 여성들은 과연 ‘남자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걸까. 오랜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남자가 몽땅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불합리한 가부장적 구조 하에서 남성등리 보이는 극단적인 ‘남성성’을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리고 이 불합리의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남성들 스스로도 이런 거칠고 때론 폭압적이기까지 한 남성다움이라는 고정 관념을 견디기 힘들어하지만, 힘들다는 것을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남성성을 파괴한다고 생각하여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렇게 남자다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당신의 진짜 모습이 그런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페미니즘 #남자다움 #남자가없는세상이아니라가부장적구조가없는세상에살고싶다 #남자도울어도돼 #남자도다정하게대우받을권리가있어 #남자라서허세부리지않아도괜찮아 #조금진지하고어려우니다른것먼거읽고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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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

과학책을 읽고 쓰고 알립니다. 해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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