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시니컬한 중학생이 읽을 만한 소설

청소년소설에서는 무검열 대화체를 많이 쓴대. 왜냐고? 어른들과 달리 청소년들은 자신의 속내를 감추는 검열의 기술을 몰라서 말할 때 거칠고 신랄하고 솔직하다는 거야.
왠지 시니컬하다는 말과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좌충우돌, 깨질 줄 알면서도 일단 덤벼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대책 없는 무모함, 무뚝뚝함과 무심함으로 뒤범벅된 일상과 시큰둥한 반응, 이런 태도가 중학생들의 시니컬함과 많이 닮아서일 거야. 주인공들이 툭툭 내뱉는 말에 낄낄대기도 하고,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낯뜨거운 장면에는 이불을 뒤집어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엄청 재밌다는 공통점이 있어. 다섯 권의 책 중에서 나와 닮아서 깜짝 놀랄 친구를 만난다면 기쁨이 두 배로 늘어날 거야.


『어쩌다 중학생 같은 걸 하고 있을까』

쿠로나 신이치 지음|정은선 옮김|뜨인돌|2012년|191쪽

스미레는 아이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방관자로 사는 게 맘 편한 여중생이야. 1학년 때처럼 조용히 지내면 될 줄 알았는데 개학 2주 만에 스미레는 교실 안의 살벌한 분위기를 알게 돼. 수업 시간에만 순진한 얼굴을 하고 앉아있을 뿐 아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물고 물리는 권력 다툼이 장난 아니라는 걸 말이야. 끼어들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아이들의 괴롭힘은 강도를 더해가고 마침내 스미레의 책상까지 없애버려. 유일하게 스미레를 편들어주던 준을 향해 아이들의 공격이 시작되는데… 이제 스미레와 준은 어떻게 될까? 몇 장만 읽어도 스미레의 매력에 흠뻑 빠질 만큼 나온 지 꽤 오래됐는데도 여전히 중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히는 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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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이순원 지음|단비|2022년|220쪽

수재인 형과 비교당하는 일에 질려 정수는 빨리 어른이 되는 게 유일한 목표야. 은행원이 되려고 상고에 진학한 정수는 더 빨리 목표를 이루려면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해.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학교까지 그만둔 정수는 배추 농사가 떼돈을 번다는 소문을 믿고 어른들을 따라 대관령으로 떠나. 일한 만큼 수중에 돈이 차곡차곡 쌓이자 정수는 어른인 양 머리를 기르고 오토바이도 사고 술도 마시면서 어른 흉내를 내기 시작해. 그런데 이상한 건 어른 놀이를 하면 할수록 정수의 속은 점점 헛헛해지는 거야. 그런 행동이 어른 노릇이 아니라 어른 흉내라는 걸 깨달았거든. 교과서에 수록된 소설이니까 낯익을 테고 작가의 자전적인 체험이 녹아 있어 70년대 이야기인데도 전혀 구닥다리 같지 않아. 정수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욕설과 치기 어린 일탈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네 하며 피식 웃음이 나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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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내 일기 읽고 있어?』

수진 닐슨 지음|김선영 옮김|라임|2014년|296쪽

제시 형이 아빠의 총으로 친구를 죽이고 자살한 후 아빠는 입을 닫고 엄마는 신경쇠약에 걸리면서 생활은 엉망진창이 돼.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도 견디기 힘든데 더 기가 막힌 건 형을 괴롭혔던 가해자를 착하고 정의로운 아이로 포장하는 거였어. 결국 헨리네 가족은 도망치듯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돼. 새 학교에서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지내려던 헨리의 다짐은 팔리 때문에 물거품이 되고 말아. 반 친구들에게 따돌림과 놀림을 당하는 팔리를 보자 형 생각이 나 참을 수 없었거든. 레슬링의 열성 팬이고 퀴즈 프로그램을 좋아한다는 공통점까지 찾으면서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져. 팔리와 함께하면서 헨리는 차츰 마음의 짐을 벗고 원래의 밝은 모습을 되찾게 돼. 무거운 주제를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는 건 일기에서 느껴지는 헨리의 진심과 시도 때도 없이 웃게 만드는 헨리와 팔리의 끈끈한 우정 때문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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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오월』

장우 지음|사계절|2015년|185쪽

소설의 중간까지만 읽으면 80년대 시골에 살던 준호 가족의 이야기구나, 하고 마음 푹 놓게 돼. 특히나 대통령이 꿈이라는 준호의 머리꼭대기에 앉아 ‘짝은오빠’를 면박 주고 깐죽거리는 여동생 순화의 말솜씨는 혀를 내두를 정도야. 야물고 당찬 순화와 순하고 착한 준호가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가족의 유일한 고민거리인 아빠의 주정도 마냥 유쾌하고 즐거워. 준호의 생일날, 오겠다는 형은 오지 않고 뒤숭숭한 소문과 함께 이 가족을 덮친 비극의 정체가 밝혀지는 부분에 이르면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을 거야. 광주민주화항쟁의 아픔과 고통을 겪어내는 한 가족의 일상에 숙연해지기도 하지만 역사소설은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게 해주는 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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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해피엔딩』

수진 닐슨 지음 김선희 옮김|블랙홀|2019년|380쪽

암으로 엄마를 잃은 스튜어트는 아빠의 재혼으로 애슐리네와 함께 살게 돼. 여자 형제를 갖고 싶었던 스튜어트는 소원을 이뤘다고 좋아하지만 그건 완전 착각이었어. 공부는 뒷전이고 멋 부리는 데만 열심인 애슐리의 눈에 스튜어트는 그냥 한심한 찌질이일 뿐이었거든. 미숙아로 태어나 몸은 약하지만 영재학교에 다닐 만큼 똑똑한 스튜어트가 잘난 척하는 것 같아 못마땅한 거지. 게다가 스튜어트와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애슐리는 아빠가 게이라서 엄마와 헤어졌다는 것과 스튜어트와 남매인 것이 알려질까 전전긍긍하게 돼.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아이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진짜 가족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느새 스튜어트와 애슐리를 응원하는 너를 보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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