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까대기를 그린 이종철입니다. 친구들에게 제가 좋아하는 만화를 소개 할 수 있게 돼서 기쁩니다. 제 취미 중에 하나는 그림책이나 만화책을 사 모으는 것인데요. 요즘은 일이 바빠서 책을 자주 구입하지 못하고 있지만 한때는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갖고 싶은 책을 사고는 했답니다. 특히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 작품들을 자주 사 모았습니다.
그래픽 노블 이란 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을 취하는 작품으로 일반 만화보다 철학적이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며 스토리에 완결성을 가지고 단행본 형식으로 발간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아마 친구들이 읽었을, 제 만화 <까대기>도 그래픽 노블 작품입니다.
군대 시절에 짬이 날 때면, 책을 읽고는 했는데요. 만화가가 되고 싶어 만화 이론을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이론서를 통해 그래픽 노블 이란 걸 알게 됐죠. 어릴 적부터 만화를 그리면서 ‘내가 그리고 싶은 만화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웹툰이나 연재만화와는 맞지 않는 것 같은데…’라는 고민이 있었는데요. 그랬던 저에게 그래픽 노블은 신기루를 발견 한 것과도 같았습니다. 저도 단행본 형식으로 만화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때부터 ‘그래픽 노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까대기>는 그 꿈이 실현된 거랍니다.
그래픽 노블은 책으로만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웹툰처럼 휴대폰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닙니다. (전자책을 통해서는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생소한 단어 일수도 있을 겁니다. 표현 기법도 다양해서 처음 읽을 때는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텐데요. 그럼에도 꼭 한번 찾아서 읽어 보길 바랍니다. ‘만화가 이런 이야기를 담을 수도 있고 이렇게도 표현될 수 있구나’를 확인하길 바랍니다.
‘친구들에게 어떤 그래픽 노블을 추천할까?’하며 꽤 오랜 시간을 고민했습니다. 덕분에 좋아했던 책들을 오랜만에 책장에서 꺼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추천하려고 고른 책들을 다시 읽으며 한동안 책에 푹 빠져 지냈습니다. 고맙습니다.
『담요』
크레이그 톰슨 글, 그림|박여영 옮김|미메시스|2012년|592쪽
『담요』는 미국의 만화가 크레이그 톰슨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만화는 한 소년, 크레이그의 성장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크레이그는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해서 괴롭기만 하고 부모의 무관심과 꽉 막힌 선생님들을 보며 어른들에게는 실망을 합니다. 괴로움과 불행함, 답답함의 연속이죠.
그런 그가 고등학교 성경캠프에서 레이나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집니다. 그에게 그녀는 한줄기 빛이 되지만 그 빛은 곧 사라지고 맙니다. 그럼에도 크레이그는 계속해서 삶을 걸어 나갑니다.
성인이 된 크레이그는 눈길을 걸으며 말합니다. “새하얀 표면에 흔적을 남긴다는 건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지나온 발자취의 지도를 그린다는 것. 설령 그것이 한순간의 일이라 해도.”
저는 성장을 담은 만화나 영화, 드라마를 좋아합니다. 성장으로 걸어가는 여러 눈길들을 좋아합니다. 저 또한 제가 청소년기에 걸었던 눈길을 만화로 담아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분이 걷고 있는 눈길은 어떤 길인지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만화의 장면, 장면마다 담긴 담요의 의미들을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글, 그림|김호영 옮김|열린책들|2018년|122쪽
프랑스를 대표하는 그림 작가 장 자끄 상뻬의 작품입니다. 상뻬 특유의 가냘픈 선과 담담한 채색이 어우러진 따뜻한 작품입니다.
작품은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와 시도 때도 없이 재채기를 하는 아이의 우정을 그립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다름’이 어쩌면 괴로움이나 부끄러움이 될 수도 있는데요. 둘은 ‘다름’을 서로를 확인하는 ‘특별함’으로 바라봅니다.
둘의 우정은 재채기를 하는 아이가 이사를 가면서 잠시 멀어지지만 성인이 된 둘은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우정을 쌓아갑니다. 잔디밭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마지막 장면이 특히 뭉클했던 작품입니다.
한국의 만화가 김성희 작가의 작품 중에 <똑같이 다르다>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장애아동 통합 보조교사로 일하며 바라본 세상을 그린 만화인데요. 제목이 말하듯, 친구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같음’을 찾아내기보다 ‘똑같이 다름’을 확인하는 관계가 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염소의 맛』
바스티앙 비베스 글, 그림|그레고리 림펜스, 이혜정 옮김|미메시스|2013년|144쪽
어느 잡지에 실린 책 리뷰를 통해서 우연히 알게 된 작품입니다. ‘염소의 맛? 동물 염소의 맛을 말하는 건가?’하고 글을 읽었는데, 수영장 물을 깨끗하게 할 때 쓰는 염소를 말하는 것이란 걸 알게 됐습니다. 제 기억에 리뷰를 쓴 기자도 ‘제목이 다르게 출간됐더라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좋은 작품을 읽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을 남겼던 게 기억이 납니다.
기자의 글과 그림이 마음에 들어 구입한 <염소의 맛>은 저에게 프랑스의 젊은 만화가, 바스티앙 비베스를 선물해 줬습니다.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그림체와 감성적인 연출에 매료됐고 작가의 팬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린 대부분의 그래픽 노블을 구입했습니다.
이야기는 짧고 단순합니다. 등이 좋지 않아 물리 치료사의 권유로 수영장을 다니게 된 남자 주인공은 그곳에서 여자 주인공을 만나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그는 늘 수영장에서 그녀를 기다리게 됩니다. 기다림 끝에 수영장에서 다시 만난 둘, 물속에서 그녀는 그에게 뭐라 뭐라 말하지만 만화는 무엇을 말하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둘은 물 밖으로 나오고 그가 그녀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묻지만 그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 후, 그는 계속해서 수영장을 다닙니다.
책을 읽고 나면, 둘 사이에 달콤함을 느끼다가도 ‘염소의 맛은 과연 어떤 맛 일까?’를 상상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책을 읽고 나서 그녀가 물속에서 뭐라 말했을지, 자신만의 상상을 해보길 바랍니다.
『브이 포 벤데타』
앨런 무어 지음|데이비드 로이드 그림|정지욱 옮김|시공사(만화)|2008년|296쪽
저는 히어로 장르를 좋아하는데요. 미국 DC 코믹스의 배트맨 시리즈도 좋아하고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들도 좋아합니다. 히어로 무비가 개봉하면 꼭 챙겨서 보는데요. 그중에서도 브이 포 벤데타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히어로입니다.
브이 포 벤데타는 파시즘에 무릎을 꿇은 가상의 미래, 영국을 배경으로 합니다. 히어로인 브이(V)가 독재 경찰국가에서 철저하게 통제 당하며 사는 민중들의 각성을 시도하고 권력에 저항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책 출간 이후, 브이의 가면은 저항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뉴스를 통해서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집회, 시위 현장에서 브이의 가면을 쓴 사람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요. 책을 읽고 나면 ‘아! 사람들이 그래서 브이의 가면을 썼던 거구나.’를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동물농장>을 쓴 조지 오웰의 <1984>를 의미 있게 읽은 친구들이라면 더욱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만화입니다.
1980년대에 그려진 만화라 만화체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텐데요. 그래픽 스토리의 거장인 앨런 무어의 글을 집중해서 읽다보면 금세 빠지게 될 겁니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브이 포 벤데타 (2005)>도 있으니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영화도 보시길 추천합니다.
『그해 봄』
박건웅 글, 그림|보리|2018년|388쪽
박건웅 작가는 제가 처음으로 알게 된 한국의 그래픽 노블 작가입니다. 그는 주로 한국 근현대사의 숨겨진 이야기에 관한 작업을 합니다. 처음 본 작품은 비 전향 장기수 허영철의 삶을 판화 기법으로 그린 <나는 공산주의자다> 였습니다. (비 전향 장기수 란 사회주의 사상이나 공산주의 사상을 포기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감옥에서 장기간 생활한 국내 게릴라, 조선인민군 포로와 남파 간첩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책에 담긴 내용에도 의미가 있었지만 ‘한국에도 그래픽 노블이 있구나’를 처음 알려줘서 저에게는 더욱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그의 작품 중에서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유신 정권 당시 평범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 하루아침에 사형을 시킨 ‘인혁당 사건’을 다룬 <그해 봄>이라는 작품입니다. 당시 정권은 사형을 선고한지 1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해 버렸는데요.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가 있는 국제 법학자 협회는 사형이 집행 된 1975년 4월 9일을 ‘사법 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했고, 엠네스티에서는 사형 집행에 대한 항의 서한을 한국 정부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유가족의 끈질긴 노력으로 사형 집행 32년 만인 2007년에 사법부는 인혁당 사건 재판 과정이 위법하고 부당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만화는 인혁당 사형수 8명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형을 당한 피해자들과 가족들의 이야기, 당시 정권의 실체, 피해자들과 함께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현재의 상황 등을 담았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저는 근현대사를 꾸준히 공부하는 편입니다. 매일 같이 뉴스를 챙겨보는 편입니다. 그래야 적어도 틀리지 않은 만화를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근 현대사를 알리는 박건웅 작가처럼 한국에는 수많은 그래픽 노블 작가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독자들에게 좋은 만화를 전하기 위해 치열하게 만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좋은 그래픽 노블 작품들이 참 많지만 웹툰에 비해, 사람들이 그래픽 노블을 잘 모르는 게 현실입니다. 친구들이 한국의 그래픽 노블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그래픽 노블 을 찾아서 읽어보길 바랍니다. 만화의 무궁무진 한 세계를 맛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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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게스트 큐레이터
어린 시절 포항제철 공단 지역에서 살았다. 시골 마을과 공단 사이에 있는 상가 동네였다. 그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부모님과 함께 제철소 노동자들과 건설 인부, 식당 종업원, 시장 상인, 농민 등 다양한 노동자의 삶을 보며 자랐고 만화 작업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생계를 위해 6년 동안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인 ‘까대기’를 했다. 그때 기록한 이야기들을 만화 『까대기』로 만들었다. 2019년, 만화 『까대기』로 <오늘의 우리 만화 상>(문화체육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사진 출처: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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