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따분하거나 답답할 때,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꿈꿉니다. 판타지는 새로운 세계로 떠나고 싶은 바람에 좋은 동반자가 되어 줍니다. 현실을 잊을 만큼 흥미진진한 상상력에 빠져들어 주인공과 함께 모험을 펼치고 돌아오면, 책을 읽기 전과는 조금 달라진 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판타지는 현실에 없는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로 현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기도 합니다. 오늘은 ‘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판타지를 소개합니다.
『비스킷』
김선미 지음|위즈덤하우스|2023년|228쪽
좋은 판타지를 기다리는 독자로서 새로운 판타지문학상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대되었습니다. 청소년 심사위원단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제1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된 『비스킷』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제성’이 주인공입니다. 제성이 지닌 특별한 능력이란 바로 자신을 지키는 힘을 잃어 눈에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이지요. 제목 ‘비스킷’은 ‘존재감’, 달리 표현하자면 ‘자존감’을 잃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도 곁에서 ‘비스킷’과 같은 존재를 만나거나, 혹은 한번쯤은 스스로가 ‘비스킷’처럼 느껴진 적이 있을 듯합니다. 소외된 존재를 보듬는 소년을 그린 판타지를 통해, 우리 역시 현실 속 소외된 존재들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나』
이희영 지음|창비|2021년|192쪽
일상에서 흔히 듣는 표현 중에 ‘영혼이 없다’라는 말이 있지요. 『나나』의 두 주인공 ‘수리’와 ‘류’는 어느 날 버스 사고 이후 몸에서 영혼이 빠져 나옵니다. ‘영혼 없이’ 남겨진 자신의 몸을 바라만 봐야 하는 두 사람 앞에 영혼 사냥꾼 ‘선령’이 나타나 일주일 내로 육체를 되찾지 못하면 저승으로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선령이 들려준 두 사람의 영혼이 몸 밖으로 빠져나온 이유는 스스로가 영혼을 거부해서라고 하는데……. 대체 두 사람에게 어떤 사연이 있기에 자신이 자기 영혼을 거부하는 일이 생긴 걸까요? 두 사람은 결국 스스로와 화해하고 자신의 ‘몸’을, 자신의 ‘영혼’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페인트』로 널리 사랑받은 이희영 작가님의 상상력은 이번에도 독자를 이야기의 매력 속으로 끌어당깁니다. 참, 이 책은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와 ‘소설Y’ 양장본 2종으로 출간되었답니다. 두 책 모두 내용은 같으니 더 마음에 드는 장정으로 읽어 보세요.
『단명소녀 투쟁기』
현호정 지음|사계절|2021년|152쪽
“나는 나의 죽음을 죽일 수 있다.”라는 강렬한 띠지 문구를 보고 사로잡히듯 펼쳐본 책입니다. 그러곤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들어 앉은 자리에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습니다. 제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인 『단명소녀 투쟁기』는 최근 가장 주목받는 신예 현호정 작가의 첫 소설입니다. 작품의 주인공인 열아홉 살 소녀 구수정은 입시 전문 점쟁이를 찾아갔다가 스무 살 전에 단명할 운명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 말에 “싫다면요?”라고 답한 수정이 스스로 삶을 이어나가는 여정을 떠나며, 이제까지 본 적 없는 힘 있고 아름다운 상상력이 펼쳐집니다. 책장을 덮고 나면 아마도 참았던 숨을 내쉬며 이 인상적인 작가의 등장에 박수를 보내게 될 거예요.
『마령의 세계』
최상희 지음|창비|2021년|256쪽
『마령의 세계』는 고양이를 품에 안고 묘한 표정으로 장기를 두는 단발머리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진 표지만으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치면 “나는 마녀의 딸이다. 이름은 마령.”이라는 첫 문장부터 단숨에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지요. 작품은 마녀의 딸인 주인공 ‘마령’이 멸망을 앞둔 세계에서 동생 ‘마루’를 지키고, 진정한 마녀로 거듭나는 이야기입니다. 이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설정인데, 정체가 의심스러운 장기 동아리 친구들이 등장해 독자들을 작품 속으로 이끕니다. 최상희 작가님의 전작들과 닮은 듯하면서도 새로운 상상력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작가님의 작품을 오랫동안 좋아해 온 친구들도, 최상희 작가님의 책을 아직 읽어 보지 못했던 친구들도 반할 만한 이야기입니다.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힘에 맞서 “동생과 친구들과 고양이가 있는” 일상을 지켜내는 특별한 마녀 마령과 친구가 될 준비,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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