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의 이야기를 만들고 이를 즐길 줄 아는 능력이 인간을 여타의 다른 유인원들과 다른 진화적 길을 걷게 했다고 한다. 인류는 말을 할 줄 알게 된 이래로 끊임없이 이야기들을 지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샘이 도통 마르지를 않는 것을 보면 일리는 있어보인다. 과학적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학습 만화가 아니라, 과학적 소재를 양념으로 삼아 진한 맛을 낸 흥미로운 청소년 소설들을 모아 본다.
『이타적 유전자가 온다』
안덕훈 지음|자음과 모음|2018년|268쪽
서울시의 낙후된 재개발 지역 반석연립에서 욕쟁이 할머니와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헛바람이 들어 궁상질에 빠진 엄마와 서울대학 갔다고 좋아했는데 데모하다가 ‘가막소’ 다녀온 뒤 폐인이 된 큰삼촌과 ‘착하게 살자’라는 문신을 자랑스럽게 새기고 살지만 결코 그렇게 살지 않는 작은삼촌과 함께 사는 이다는 삶이 짜증난다. 삶은 가장 좋은 교과서라고 했던가. 왜 굳이 돈들여 인놀방(인문학놀이방)에서 [이기적 유전자] 따위를 읽고 지루한 쌤의 수업을 들어야 하는가? 그 책에 등장하는 경쟁을 통한 비정한 생존 규칙과 배신이 난무하는 게임 이론, 적자생존, 약육강식, 핸디캡 원리 따위는 이미 현실에서 충분히 겪고 있는데. 그럼에도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그래도 누군가의 마음 언저리 어딘가에 남은 이타적인 마음 조각 때문이 아닐까.
『수상한 유튜버 과학 탐정』
윤자영 지음|이경석 그림|탐|2021년|212쪽
이제 더 이상 돋보기와 지팡이만이 탐정들의 무기가 아니다. 누구나 영상을 찍고 올리고 정보와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유튜브의 세상에서는, 이를 잘 다루는 것도 탐정의 중요한 능력이다. 창훈, 경호, 영상이 처음 유튜버가 된 목적은 과학을 알리기 위해서였지만, 점차 그들은 괴담, 학교 폭력, 왕따, 교내 도난 사건, 과거 신상털이와 가출팸 등등 요즘 아이들이 겪는 문제들에 대해서 같은 또래 아이들이 바라보는 방식으로 해결해나가며 성장한다. 작가의 전작 [수상한 졸업여행]도 함께 보면 더 좋을 듯
『복제인간 윤봉구』
임은하 지음|정용환 그림|비룡소|2017년|172쪽
다른 건 못해도 짜장면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만드는 윤봉구에게 어느날 편지 한 통이 배달된다. “난 네가 복제인간인 것을 알고 있다”라는. 내가 누군가의 카피본이라니? 자신을 너무나 사랑해서 복제인간으로 만들어낸 엄마와 복제인간인 자신을 차별하지 않고 대해주는 친구와 그리고 자기만의 정체성을 찾아낸 봉구 자신의 내적 성숙의 과정은, ‘복제인간, 그게 뭐 어때서?’라고 가볍게 넘길 수 있게 만든다. 어떻게 태어났든, 일단 태어난 인간은 고유한 인격체라고! 비룡소 스토리킹 수상작이라 초등생용으로 나왔지만, 중학생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최근 5권까지 출시되었다.
『아이를 빌려 드립니다』
알렉스 시어러 지음|이혜선 옮김|미래인|2019년|284쪽
인류의 수명이 200년이 넘어서고, 출산율은 제로인 시대. 사람들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게 어렵다고 생각해 아이를 낳지 않지만, 깜찍하고 귀여운 아이들을 잠깐씩 보는 건 여전히 즐거워한다. 마치 귀여운 반려동물들의 영상은 찾아보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래서 남의 아이를 잠깐 빌려서 아이의 귀여움만 만끽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아이는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돈벌이 수단이 되기에 아이의 납치 및 유과가 난무하고, 피피 시술(Piter Pan 시술, 영원히 아이의 몸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시술)이 불법으로 행해진다. 이런 시대에 도박판에서 자신을 판돈 대신 얻었다는 ‘삼촌’ 디트에 의해 이리저리 ‘빌림’을 당하며 살아가는 아이 태린의 삶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스노볼』
박소영 지음|창비|2020년|472쪽
<트루먼 쇼>와 <설국열차>의 세계가 픽션 속에서 맞닿으면 이런 느낌일 것이다. 기상이변으로 인해 영하 41도의 기온이 지속되는 세계. 사람들은 생존의 이유를 찾고자, 이상향인 스노볼을 만든다. 장난감 스노볼처럼 생긴 둥근 유리볼 안의 세상, 스노볼. ‘액터’라 불리는 그 곳의 사람들은 따뜻한 기온과 화려한 생활을 마음껏 누리는 대신, 삶의 모든 순간들을 리얼리티 쇼의 소재로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이 액터 뒤에는 이들의 삶을 좀더 재미있는 쇼로 만들기 위해 궁리하는 ‘디렉터’들이 있다. 지옥처럼 추운 곳에서 벗어나 스노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액터 혹은 디렉터가 되어야 한다. 늘 스노볼을 동경하며 디렉터의 꿈을 꾸던 쌍둥이 소녀 전초밤에게 우연히 액터가 될 기회가 주어진다. 태어나기 전부터 줄곧 고된 리얼리티 비극을 진짜 몸으로 감내하며 살았던 초밤은 과연 스노볼 속의 화려하지만 모든 것이 거짓인 세계를 제대로 살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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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과학적으로 접근한 이들의 노력
유전자 – 나를 나답게 만들면서 동시에 나를 다른 누가 아닌 나일 수 밖에 없게 하는
하리
과학책을 읽고 쓰고 알립니다. 해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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