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거나 이끌거나, 일제 강점기의 여전사들 (게스트 큐레이터)

한일병합을 저지하려고 했던 순정효황후, 기생 신분으로 총을 들었던 독립운동가, 조선 최초의 여의사, 일본 기업의 부당한 처우에 고공 시위를 벌였던 여공, 이역만리에서 고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강제징용 노동자와 여성 혁명가…. 목숨을 걸었지만 남성 혁명가들에 비해 이들의 삶은 제대로 된 조명을 받지 못했다.
남성 중심 사회의 고유한 문화적 정서가 문학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 현실이지만 아래 다섯 작품은 그러한 편견에 맞선 독보적인 작품들이다. 일제 강점기, 항일과 조선 독립에 앞장섰던 여전사들의 삶을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을 덧입혀 때론 영화처럼 때론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고 감동 있는 서사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주체가 여성이어서 더 극적일 수도 있겠지만 어느 고유한 성(性)만을 위한 서사라서가 아니라 이 시대가 원하는 여성성을 청소년 역사소설을 통해 만날 수 있는 다섯 편을 소개한다.


『괴불주머니』

윤혜숙 지음│단비│2020년│204쪽

 때론 역사가 소설보다 더 치열한 법이다. 마지막 황제 순종의 두 번째 부인인 순정효황후는 14세의 어린 나이에 황후가 된다. 1910년 한일병합이 강압적으로 이루어질 때 황후의 나이는 고작 17세였다.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파들에 의해서 한일병합체결 어전회의가 있을 때 병풍 뒤에서 엿듣고 있던 황후는 뛰쳐나가 옥새를 치마 속에 감췄다고 한다. 물론 큰아버지인 친일파 윤덕영은 황후의 치마 속을 뒤져 옥새를 찾아냈다. 소설은 비정한 이 장면을 모티브로 하여 120년 전 그 시대를 따라간다.
 괴불주머니는 자투리 천으로 만든 삼각 모양의 주머니에 수를 놓은 장식품이기도 하다. 삼각 모양의 각 모서리는 물, 불, 바람 같은 삼재를 막아주는 벽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수방 나인인 연수는 괴불주머니를 순정효황후에게 왜 선물했을까? 어린 황후에게 풍전등화 같은 나라의 운명을 막아줄 행운 주머니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우리 고유의 자수 이야기와 괴불주머니를 통해서 암울했던 시대를 펼친다. 그 시대의 여전사는 비단에 수를 놓아 괴불주머니를 만든 연수이기도, 옥새를 빼돌렸던 순정효황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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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치마 마트료시카』

김미승 지음│다른│2020년│200쪽

디아스포라, 그리스어로 ‘씨를 뿌린다’는 의미다. ‘검정치마 마트료시카’는 나라를 잃었던 암울한 시대에 살았던 디아스포라 고려인들의 이야기다. 더 깊이 들어가자면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여전사 김알렉산드리아와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된 노동자 김윤덕의 이야기다. 그들이 씨를 뿌리듯 역사의 거대한 바퀴 속에서 희망을 뿌렸던 치열한 이야기가 눈물겹게 펼쳐진다. 러시아의 마트료시카라는 전통 공예품에 검정 치마를 입힌 마트료시카로 만들어 쑤라에게 선물한 아버지의 선택은 많은 걸 의미한다. 마트료시카 인형이 의미하듯 그 안에 더 작은 마트료시카 인형이 계속 나오는 것처럼 쑤라의 안에는 더 많은 쑤라가 존재함을 알려준다. 러시아 동쪽 끝 이역만리에서 벌어진 그들의 고단한 삶과 나라의 운명은 어찌 그리 닮았는지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그러한 곳에도 언제나 혁명은 살아있기 마련. 그 주체적인 주인공들의 고난과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씨를 뿌리며 희망을 품었던 디아스포라 고려인들의 용기와 성장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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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공녀 강주룡』

박서련 지음│한겨레출판│2018년│256쪽

여성 노동자의 권리는 지켜지고 있는가? 오래전 이 물음에 답한 노동자가 있었다. 을밀대에 몸을 묶고 고공농성을 한 최초의 여성 노동자 강주룡의 이야기다. 엄혹한 시대에 더 암울한 환경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강주룡은 주체적인 여성의 삶을 보여준다. 비굴하지도 처연함을 가장한 신파적인 요소도 없다. 그래서 강주룡이 더 매력적이다. 그 시대를 살아간 많은 여성의 삶이 그러하듯 강주룡 역시 아버지에 의해서 일방적인 혼인을 한다. 빤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강주룡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정해진 길을 뿌리치고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그렇기에 강주룡이 억압된 환경 속에서 부당한 노동을 외치며 지붕 위로 올라간 용기에 박수를 치게 된다. 시대가 바뀐 지금도 체공녀 강주룡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여성, 남성이라는 성을 떠나서 수없이 많은 강주룡이 이제는 더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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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가져도 되오?』

오채 지음│단비│2018년│176쪽

꿈이라는 건 꾸라고 있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여기 꿈을 꾸는 게 아니라 가져버린 여성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 김점동의 이야기다. 딸만 넷인 집에 막내로 태어난 김점동은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할머니로부터 갖은 구박을 받는 걸 보면서 자랐다. 여성의 존엄이 무너지는 걸 가장 가까운 어머니를 통해서 확인한 셈이다. 그렇기에 김점동이 꿈꾸었던 건 더 무모해 보였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계집애라는 말에 도전이라도 하듯 김점동은 이화학당에 들어간다. 무성한 소문과 편견이 있던 시대였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꿈을 향해 첫발을 딛기 시작한 김점동은 훌륭한 조력자들을 만나면서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이화학당에 들어가서는 언니와 편지로 연대하며 각자의 꿈을 응원하기도 한다. 선교사의 도움과 남편인 박유산의 외조도 있었다. 조선의 아픈 역사 속에서 여성이 꿈을 갖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조력이 더없이 소중하다. 김점동이기도 하고 김에스더, 후에 남편의 성에 따라 박에스더가 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가 된 한 여인의 꿈을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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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슬립2119』

임어진, 정명섭, 이하, 김소연 지음│사계절│2020년│180쪽

2119년 임시정부 수립 200년이 되는 미래 시대가 이 소설의 배경이다. 정확한 기록이 소실되었다는 상상력을 통해서 과거 유물의 흔적을 미래의 도구를 통해 찾아간다는 발상이 신선하다.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며 네 명의 작가가 찾아가는 과거의 그 어느 지점은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 준다. 양자역학이라는 기술을 통하여 역사의 흔적을 추적해가는 과정은 흥미롭기까지 하다.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는 사실 숨은 그림처럼 우리 역사의 곳곳에 숨어 있다. 숨어 있기에 조명이 덜된 것이 아니라 그간 남성중심적인 독립운동가가 더 많은 조명을 받았기에 덜 드러난 것뿐이다. 타임슬립을 통하여 찾아간 네 명의 여전사를 만나본다면 시대적 편견과 고단한 그들의 삶 속에서 열정적으로 피워냈던 독립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간절했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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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해연

게스트 큐레이터

<그까짓 개> <우리는 자라고 있다> 공저<이웃집 구미호> 등의 청소년소설을 썼다. SF소설 마니아였으나 요즘은 역사소설에 심취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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