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달걀 말고 무엇?
가끔 너무 힘들고 지치면 왜 이러고 사는가 스스로에게 묻게 되지요. 어두운 터널 속을 걷는 기분이 들 때도 있고요. 그래도 아주 가끔 누가 다정하게 말 걸어주면 눈물이 나고, 마음에 꽂히는 노래가 나오면 그 순간만큼은 좋다, 싶지요. 어쩌면 그런 게 삶이 아닐까요? 삶은 달걀을 먹으면 목이 막혀 숨을 못 쉴 것 같지만 그 순간 물 한 모금 마시면 뭔가 시원하게 내려가는 기분. 독자 요청으로 들어온,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가치 있고 분량도 있는’ 소설책을 권해 봅니다.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소설책(재미도 있는)’ 을 요청해주신 민서님을 위한 독자 요청 큐레이션입니다.
『시인 X』
엘리자베스 아체베도 지음|황유원 옮김|비룡소|2020년|500쪽
시인 X는 시오마라, 이 소녀의 이름이야.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소녀, 심지어 집에서마저 환영받지 못하는 소녀. 마치 소녀의 일기장에 쓰여진 산문시를 훔쳐 읽는 듯한 이 소설은 꽤 두껍지만(그건 시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럴 뿐, 한 페이지에 들어가는 글자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아) 한 편 한 편 읽다 보면 정말 시집을 읽는 것처럼 금세 빨려들어 읽게 돼.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일상적으로 아웃사이더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지 너무 생생하게 드러나 있어 읽다 보면 마치 내가 쓴 일기처럼 느껴지기도 해. 미국 할렘가의 흑인 소녀가 마치 나인 것처럼 느껴져 나도 모르게 사랑해주고 싶고, 전쟁터 같은 이 세상에 함께 뛰어들 준비를 하고 싶어져.
『지구 행성에서 너와 내가』
김민경 지음|사계절출판사|2020년|252쪽
지구라는 행성에서 우리 인간의 존재가 과연 얼마만 한 크기일지 생각해본 적 없었을 거야, 지금까지는. 응, 나도 그래. 그런데 올해 엄청난 일들을 겪으며 우리는 지구에서 가장 유해한 존재가 인간임을 깨닫고 있지. 이 책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이자 모두가 한번쯤 도전해보지만 결국 실패하고 마는 세계적 고전 <모비 딕>에 대한 책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지구에서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를 하나 만나 그 이전의 현실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는 이야기야. 더 나아가 지구 행성에서 수많은 종들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자세를 보여주는 책이야.
『유원』
백온유 지음|창비|2020년|228쪽
살았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언니가 아니었을까? 12년 전 아파트 화재 사고로 언니가 죽고, 여섯 살이었던 나는 언니가 이불에 둘둘 감싸 창밖으로 던져 살아남았다. 그 뒤로 나는 어딜 가나 주목받는 삶이 되었고,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고마운 사람들에게 자꾸 사나운 마음을 갖게 된다.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참사를 맞이하고 희생자를 애도하지만 생존자의 기분이 어떤지는 잘 헤아리지 못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 역시 생존자이다. 크고작은 비극들을 간신히 피해 간, 스러지고 상처 입으면서 이 생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열여덟 소녀 ‘유원’은 바로 또 다른 나의 이름이다.
『설이』
심윤경 지음|한겨레출판사|2019년|280쪽
<나의 아름다운 정원>에 이은 또 하나의 심윤경 표 성장소설. 읽고 좋았다면 부모님한테 권해 드려도 좋아. 새해 첫날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진 갓난아기, 설이. 보육원에서 세 번의 입양과 파양을 겪으며 열세 살에 마침내 부유층 부모를 만나 최고의 교육을 받게 된다. 설이는 과연 행복했을까? 대한민국의 입시 교육 앞에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관심 이런 것들이 정말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일까를 의심하게 하고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야. 심윤경 작가가 전작에서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아이들은 묵묵히 자기 인생조차 내걸어야 한다고” 말해버린 건 아닐까 걱정하면서 “아이들이 침묵하지 않았으면, 착한 아이가 되지 않았으면, 되바라지게 자기주장을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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