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 잡히지 않는 두꺼운 책을 우리는 일명‘벽돌책’이라 부른다.‘아기 돼지 삼형제’에서 늑대가 끝끝내 넘어뜨리지 못한 집이 바로 벽돌집이었다. 그만큼 무겁고 튼튼하기 때문이다. 여기 소개하는 벽돌책들 역시 두께는 만만치 않지만 이 세 권만 끝내면 당신은 모두가 인정하는 책읽기 장인이 될 수 있다. 꿀잼 보장 벽돌책의 세계로~
『머시 수아레스, 기어를 바꾸다』
메그 메디나 지음│밝은미래│2019년
대개의 경우 청소년용 책은 두께 2센티미터 내외, 200쪽이 조금 안 되는 분량으로 나온다. 그러니 3.2센티미터, 432쪽의 이 책은 벽돌책 1단계라 할 수 있겠다. 미국의 청소년들은 어떤 생활을 할까. 영화나 드라마에 곧잘 등장하는 금발머리에 백인, 커다란 이층집, 비싼 차가 우리 머릿속에 클리셰처럼 떠오르는 장면일 것이다. 그런데 실망하지 말기를. 머시 수아레스라는 미국적이지 않은 이름의 소녀를 둘러싼 학교와 가족 이야기는 너무나 우리네 일상 같아 전혀 이국적이지 않다. 그래서 더 동질감을 느끼고 빠져든다. 비주류, 소외 계층의 당당하고 평범한 일상이 바로 미국 사회의 한복판에 있음을 힘 주지 않고 자연스레 보여 주는 작가의 내공이 빛나는 책.
『전갈의 아이』
낸시 파머 지음│비룡소│2004년
4.5센티미터 736쪽의 이 책은 벽돌책 2단계쯤 되겠다. 다행히 글씨가 커서 생각보다 쑥쑥 넘어간다. 이름부터 주인님 냄새가 나는 거대 마약 왕국의 대부 엘 파트론의 복제 인간 마트. 엘 파트론은 클론의 장기 공급으로 140세가 넘도록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고, 마트도 언젠가는 엘 파트론의 장기를 대체하는 부품으로 전락할 운명에 처해 있다. 왜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대부>와 <위대한 개츠비>, <아일랜드>를 떠올리게 되는 미래소설이며, 로맨스에 휴먼드라마에 모험담과 성장담을 재미와 반전이라는 양념을 넣어 적절한 비율로 완성한 책. 그러니 재미가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다. SF가 대세 문학으로 자리 잡은 원년에 다시 꺼내 읽으며 낡은 느낌이 들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오히려 어느 정도 익숙해진 SF 서사 구조 덕에 누구라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고전이 되었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지리 지음│사계절│2016년
드디어 올 것이 왔다. 1단계를 거쳐 2단계까지 통과한 여러분을 격하게 환영한다. 5.3센티미터, 856쪽, 말 그대로 완벽한 ‘벽돌책’이 기다리고 있다. 제목에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떠올렸다면 빙고! 러너 영, 니스 영, 다윈 영, 영광으로만 이어져 있는 1지구 ‘영’ 가문 3대에 걸친 악의 진화를 그야말로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과거인지 미래인지 가늠이 안 되는 시간과 귀족풍의 분위기가 풍기는 서구물 분위기이지만 내용은 그야말로 한국인이 제일 사랑하는 가족 잔혹극! 범죄소설이자 법소설이자 철학소설, 사회소설이며 로맨스에 SF, 학원물을 팍팍 섞은 이 대소설은 독자에게 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끝까지 재미와 반전으로 밀어붙인다. 한국 소설의 진화 그 자체이기도 한 박지리 작가의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꼭 격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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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오탈자
각종 오자와 탈자 전문. 책으로 인생의 오류와 탈선을 배웁니다.